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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가밀로 신부 서한
임 가밀로 신부 서한 15-2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7.09.20 조회 671
이메일 eunju2843@naver.com

임 가밀로 신부 서한 15-2                   1896년 말 보고서                          부엉골, 1896.6.21.

 

 

이제, 구교우 신씨 가족에 대하여 몇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주교님께서는 제가 작년에 신씨 가족을 재회하고 크게 기뻐한 사실을 아실 것입니다. 그들은 현재 청주(淸州) 공소에 속하는 산동이라는 면(청원군에 속하던 산내이상면(山內二上面)을 말한다)의 호종골(浩亭里를 말한다)과 배나무골(梨木里를 말한다)에서 살고 있습니다. 지난번 제가 주교님께 올린 보고서에서 저의 희망을 밝히면서 이 교우 가족의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고 말씀드린 것으로 기억합니다. 사실은 저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지만 하느님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제가 극복할 수 없는 어려움이 나타나자 저는 분도 성인께 신씨 가족 문제를 해결하여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동시에 저는 정열을 바쳐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신씨 가족 모두에게 성 분도 패를 보내주었습니다. 결국, 분도 성인이 모든 일을 다하여 주시었습니다. 그 분은 저와 신씨 가족 교우들을 가로막고 있던 벽을 허물고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길을 터주시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 교우 가족이 호종골에서 약 20리 떨어진 어느 외교인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 가족은 모두 제가 매년 성사를 집전할 때 그들이 사는 곳에서 30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가장 가까운 공소에 성사를 받으러 가고 있습니다. 금년에 그들은 저를 그들의 집에 맞아들이고자 했습니다. 사실 제가 바라고 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회장인 유 안드레아는 신씨 가족을 발견하고 기뻐하며 영세할 준비를 갖춘 여인들에게 정해진 날에 제가 자주 가는 능수골(鎭川郡 栢谷面 杏井里)에 오라고 전하고자 호종골로 서둘러 갔습니다. 제가 직접 호종골로 가고 싶었습니다만 아직은 그럴 단계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능수골에 도착했을 때 과연 그 여인들은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 여인은 50살쯤, 또 한 여인은 36~37살쯤 되어 보였습니다. 그녀들의 하녀들에게까지도 이곳에 온 사실을 숨기기 위하여 그곳까지 걸어서 왔고, 해가 뜨기 전에 집을 출발하였다고 했습니다. 주교님께서 이 두 여인이 그렇게 오랫동안 말로만 듣던 저를 직접 만나보고 얼마나 기뻐하였는지 짐작하시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녀들은 기뻐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들에게 저는 진정 하느님이 보내신 사자(使者)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 여인들은 그들의 부모한테 들은 이야기를 통해서만 신부를 알고 있었던 만큼 그들이 저를 만나고 그렇게 기뻐한 사실은 저희 선임 신부님들이 얼마나 훌륭하게 일하였나 하는가를 잘 보여 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잇을 것입니다. 저는 그들과 오랫동안 얘기를 나누는 가운데 신씨 일가 중 여러 명이 죽음이 임박하여 대세(代洗-세례를 베풀 수 있는 사제를 대신하여 예식(禮式)을 생략하고 세례를 주는 것으로서, 비상 세례라고도 한다)를 받았고, 수명의 여인들이 교리문답을 공부하고 있으며 아침 저녁으로 기도를 올리고, 그들이 첨례표를 갖게 된 후로는 일요일이나 첨례날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신씨 가족은 약 수백 명에 달하는 대가족인데 그들 모두 천주교가 무엇인지 알고는 있으나 많은 사람들이 외인들을 두려워한 나머지 신자가 되기를 주저하고 있으며 미신을 계속 숭배하고 있습니다.

 

언제 이들이 모두 사탄의 속박에서 벗어나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품으로 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고기를 잡은 것처럼 큰 수확을 거둘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서 내려 주시는 조그만 은총이면 족할 것 같습니다. 성 베드로와 같이 튼튼한 손목은 갖고 있지 않지만 제가 그물을 던질 채비를 하고 큰 고기를 낚기를 희망하면서 하느님의 지시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일이 잘 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동전이 어디에 있는 지 제게 알려 주셨으니 그것을 찾으러 갈 방법도 틀림없이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벌써 시작부터가 희망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 제가 능수골에 도착하던 바로 그날에, 앞서 말씀드린 그 여인에게 영세를 주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한 여인에게는 마리아’, 다른 한 여인에게는 안나라는 본명(本名 : 세례명이라고도 한다)을 지어 주었습니다. 저는 이 두 여인이 미신을 전혀 숭배하지 않고 있다는 확신을 얻고 난 다음에야 그들에게 영세를 주었습니다. 그들의 교리지식은 완벽하다고 할 수 잇을 것입니다. 특히 마리아는 교리지식에 관한 한 누구에게라도 맞설 실력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1866년 박해 당시 교리 서적들이 대부분 불에 타 없어졌고, 이 신씨 가족이 그 후 교우들과 접촉이 없었을 텐데 어디에서 그만큼 배울 수 있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제 정말 충실하고 정열적인 두명의 사도를 확보한 셈입니다. 이 두 여인은 앞으로 그들의 부모가 모두 교우가 될 때가지 이 땅과 하느님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수고를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 다음번 성무집행 때에는 그녀들 집안의 다른 사람들에게 영세를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녀들의 집에 직접 가서 영세를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들은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묵주를 여러 개 가지고 왔는데, 그중 몇 개를 골라 제가 방사를 놓았습니다. 언젠가 주교님께서 보신 것처럼 묵주알이 명주실에 꿰어 있었습니다.

 

금년에는 중요한 일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지난 2월에 조선 사람들이 어떤 큰 집에서 진을 치고 있던 일본군을 쫓아내려고 했을 때 일본군이 이 집에 불을 질러 거의 다 타버렸는데, 이 집의 부지를 제가 매입한 것입니다. 이 집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인 장원의 큰 시장 안에 위치해 있습니다. 주교님, 제가 맡고 있는 본당에서 저희 천주교가 좀 성장을 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이 집의 매입은 하느님이 저희 본당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시어 아주 좋은 조건으로 이루어졌습니다. , 거래도 제가 바라던 시기인 5월에 이루어져 성모님은 그곳에 당신을 위한 성당이 세워지기를 원하시는 듯합니다. 그곳에는 불타버린 집의 주춧돌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더 손질한 필요가 없습니다. 남은 문제는 나무로 집을 짓고 기와를 올리는 것입니다. 성모님을 위해서라면 제가 가지고 있는 돈이 얼마 되지 않지만 이를 위해 기꺼이 사용하겠습니다. 그러나 그 돈만으로는 충분치 못합니다. 저로서는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나머지는 성모님께서 이루실 것으로 믿습니다. 아무리 힘든 곤경에 처할지라도 하느님 나라에 갈 때가 오기를 항상 기다리면서, 주님이 맡기신 일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사제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은 짧으니 그 일을 우리 후계자들에게 물려주자라는 사고방식은 저희 사제들의 사명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선에서는 말에 의한 축복은 사람들에게 별 효과가 없으니 어떤 다른 방법을 써서 저희 천주교를 세상에 알려야 하겠습니다. 게다가 저희는 개신교인들을 이겨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들은 동분서주하며 악을 퍼뜨리고 있습니다. 저희와는 반대로 그들은 요즈음같이 불안한 시기에 지방에서 돌아다니는 것을 삼갑니다. 저는 그들이 쉬고 있는 동안 많은 성과를 거두었지요. 그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되면 무척 화가 날 것입니다.

 

지난 봄 약 30명의 예비자가 영세를 받기 위해 저를 기다리고 있던 공소에 성사를 주러 재차 떠날 생각이었지만 주교님께서도 알고 계시는 폭동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6개월 전부터 저는 반도(叛徒)들과 함께 사는 셈입니다. 그들은 제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제가 성무집행 할 동안 몇 번이나 그들을 만났습니다. 심지어 그들에게 붙잡힌 적도 있었는데,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분명히 저를 보호하여 주시고 계십니다. 제 공소의 교우들도, 몇 번인가 반도들이 찾아와 고생했던 한명의 교우를 제외하고는, 그렇게 큰 고통을 당하지는 않았습니다. 반도들은 그 교우 집에 있던 몇 자루의 옛날 총, 말 몇 필 그리고 돈을 조금 빼앗아 가고, 교우 몇 명에서 매질을 했는데 매맞은 사람 중 회장이 자칫 목숨을 잃을 뻔 했습니다. 그는 한 달째 몸을 숨기고 있는데, 다시 일하기까지에는 시간이 좀 흘러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러한 일이 벌어진 것은 상산 공소(진천(鎭川)을 옛말로 상산(常山)이라 하였는데, 이 표기를 따라 쓴 것 같다)에서입니다. 그 곳 교우들은 대부분이 옹기를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금년에는 반도들 때문에 옹기를 한가마도 구어내지를 못하였답니다. 상산 공소는 제가 알고 있는 여러 공소 중 가장 아름답고 커다란 공소입니다. 상산 공소에서 일어난 이 일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일이 없었습니다.

 

의병들이 저희 교우들에게 원한을 갖고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본래 그들은 일본군을 소탕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의 전부이었던 것 같은데, 그들의 희망과 의도대로 되지 않자 그들은 총부리를 식량과 부호들의 재물로 돌리게 되었습니다. 저희 교우들은 가난한 까닭에 그들에게 약탈의 대상이 되지는 않지만 먹고 살기에 필요한 것 이상으로 재물을 소유하고 있는 외인들은 모두가 다 약탈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과거에 그들 중 상당수가 바로 가난한 사람에게서 돈을 빼앗아간 장본인들이기 때문에 그 댓가를 치루고 있는 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장도 서지를 않고 있으며 여러 개의 마을, 심지어는 도시 전체가 불에 타버린 경우도 있습니다. 충주와 이천은 불에 타 사라져 버렸습니다. 또한, 여주, 장원을 포함한 몇몇 도시의 상당 부분이 불에 타 없어졌습니다. 특히, 일본군이 불을 많이 질렀는데, 사람들이 입은 피해의 대부분이 그들의 소행으로 인한 것입니다.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이곳에도, 잘못이 있는 사람들이 치러야 할 댓가를 무고한 사람들이 치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평화가 다시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관군이 도처에서 반도들을 소탕하고 있습니다. 이달 17일에는 관군이 반도들이 우글거리는 여러 개의 마을을 동시에 포위하였습니다. 관군이 도착하자 반도들은 한 사람도 저항하지 않고 모두 도주해 버렸습니다. 관군이 계속해서 주변 지역을 점거하고 있는데, 앞으로 10일 이내에 비어있는 집들에 주인이 돌아오지 않을 경우 이를 불살라 버리겠다고 합니다. 관군은 죄가 없다고 인정한 사람에게는 무척 관대합니다. 이러한 조치로 인해 반도들이 다시는 혼란을 일으키지 않고 몇 달 동안이나 중단되어 있는 관가 업무도 정상으로 회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지난 1월 후로는 모든 것이 혼란에 빠져 있는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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