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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가밀로 신부 서한
임 가밀로 신부 서한 15-1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7.09.20 조회 677
이메일 eunju2843@naver.com

임 가밀로 신부 서한 15-1                1896년 말 보고서                     부엉골, 1896.6.21.

 

주교님께,

 

우리 교구가 어느 때 보다도 더 풍요로운 구원의 열매를 거둘 수 있도록 은총을 내려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제 마음 깊은 곳에서 용솟음치고 있습니다.

 

그간 저희는 많은 시련을 겪어온 것이 사실입니다. 동학군 때문에 고생을 한 후엔 소위 의병이라는 사람들이 일본군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방어한다는 명목으로 도처에 식량을 약탈해 갔고 저희에게 노골적으로 적대적인 행동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은 저희 천주교가 성장하는데 커다란 장애가 되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련을 통해 하느님이 저희에게 시련을 주신다 해도 저희는 하느님이 머지않아 축복의 손길을 뻗치실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 교우들이 관여하지도 않은 봉기는 머지않아 끝이 날 것이고 새로운 영광의 빛이 저희 성스러운 천주교 위에 비추어질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가 도래하기를 기도합니다. 생활 속의 모든 걱정과 하찮은 괴로움은 아무래도 좋습니다.

 

작년에는 41명이란 얼마 안 되는 사람에게 영세를 준 것으로 만족해야 했으나 금년에는 91명이나 되는 어른들에게 영세를 줄 수 있어서 무한한 기쁨을 느끼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금년보다 더 나은 성과를 거둘 수 있기를 바라며 제가 악마의 손아귀에서 구하는 생명의 수가 금년과 같은 비율로 증가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 기도드립니다. 외교인들을 개종시키는 문제는 아주 미묘한 것임을 주교님께서도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개종 문제에 너무 직접적인 개입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외인들 앞에서 공개적인 전교를 하는 것은 기대와는 반대되는 효과를 낳을 수 있고, 외인들을 개종시키되 성공하지 못하는 원이 됩니다. 그러나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아무 노력도 하지 못하고 그들이 방황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괴롭기 그지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들을 성모님께 의탁했습니다. 성모님께서 성자 그리스도의 피로 죄를 용서받은 어린 양을 불쌍히 여기시도록 기도합니다.

 

금년에는 외교인 자녀들로서 임종대세를 받은 어린애들도 그 수가 상당히 증가하였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천당에 이르는 길이 열리자마자 모두 서둘러 하느님 나라에 갔습니다. 어린이들에게 임종 대세를 주는 데는 옹기 행상을 하는 여인들의 공이 큽니다. 이 여인들은 모두 천당에 갈 것입니다. 이 여인들은 임종대세를 받을 아이가 나타날 때마다 그들의 고된 일도 잊을 만큼 큰 위안을 얻고 있습니다. 예비자들의 대다수는 역시 옹기마을에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양반이란 사람들은 하느님의 은총을 받고 교우가 되기에는 너무 자만심이 거센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동학군의 반란과 의병들의 활동으로 인해 양반들은 커다란 타격을 받았고, 그들의 위신 역시 크게 실추되었습니다. 이런 벌을 내리시는 분이 바로 하느님이란 사실을 알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들은 소위 양반 의식에 사로 잡혀 교우가 되는 것을 명예와 지위가 실추되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렇지만 자신들에게 저항할 줄 아는 사람들 앞에서는 기가 죽고는 합니다. 저로서는 평민들에게 거는 기대가 큽니다. 이들이 훨씬 온순하고 대화를 나누기가 쉽습니다. 저희 천주교의 장래는 물론 조선 사회의 장래도 이들에게 달려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 여인이 영세를 그렇게도 받고 싶어 했으나 임종 대세도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 제 마음이 무척 아픕니다. 이 여인은 약 1년간 그녀의 남편과 함께 수령동 공소에 피신해 있었는데 그녀가 매일 암송하던 경문도 그곳에서 배운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교우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 때문에 그녀가 극구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외인들의 마을에 가서 살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교우들의 마을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사를 한 지 한 달도 채 못 되어 그녀는 심히 몸져 눕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남편에게 신부님을 뵐 수만 있다면 영세를 받을 수가 있을 터인데, 그러면 아무 걱정 없이 죽을 수 있을 것인데. 여보, 여기서 10리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신부님이 계시니 당신이 가서 신부님을 모셔와 주세요라며 수차례 저를 부를 것을 요청하였답니다. 그러나 남편은, “그렇게는 못해! 그 서양놈 만나러 못가! 당신은 내가 그를 데리러 가면 그가 이리로 올 거라고 생각하는거요?” 라고 했답니다. 그녀가 계속해서 그럼요. 틀림없이 오실거에요, 신부님을 모셔오기 싫으시면, 수렁동의 회장님을 불러 주세요. 그분 역시 영세를 줄 수 있으니까요하니 남편은 영세 받는 것이 뭐가 그렇게 급해? 당신은 죽지 않을거야!” 했습니다. “아니에요. 곧 죽을 거에요.” 하며 그녀는 수차례 간청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녀는 영세를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깨닫고, 그녀의 남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당신이 신부님도 회장님도 모두 모셔오기를 거부하니 할 수 없군요.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님께서 그걸 아시고 저를 그대로 지옥으로 보내시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님이 저를 구원하시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이 여자 예비자, 아니 이제는 그녀를 교우라 해야겠지요.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님을 찾으면서 3~4일 동안 계속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합니다. 이 얘기를 듣고 저는 그녀가 구원을 받았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작년에 제가 주교님께 말씀드린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동학군이 교우들에게 심한 박해를 가하고 있었을 즈음에 홍씨라는 예비자가 교회 서적을 구하기 위하여 어느 한 마을의 회장을 만나러 온 일이 있었습니다. 봄 판공 때 그는 교리문답을 모두 외우고 있었고, 문맹인 그의 부인을 가르치기까지 했었습니다. 그에게 영세를 주기에 앞서 저는 그가 충분히 공부를 했는지 알아보고자 그를 시험하여 보았습니다. 결과는, 입이 마를 정도로 칭찬을 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교우 마을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한 커다란 외인 마을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집에 혹시 미신과 관계되는 물건들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가 의심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지나가는 말로 미신과 그 말 많은 조상들의 신주(神主)에 대해 얘기를 꺼내면서 당신 집에 혹시 그런 물건들이 있나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사실 그 물건들 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습니다. 저는 미신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우가 되려고 하지 않는 제 아들 녀석들과 제 부모님 때문에 아직까지 그 물건들을 없애버리지 못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건 마귀를 곁에 두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 나무조각이 당신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겁니다. 영세를 받고자 한다면 당신은 집에 있는 그 물건들을 모두 없애버려야만 합니다. 오는 가을 판공 전까지 그 물건들을 모두 없애 버린다면 당신에게 영세를 주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말문이 막혀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위와 같은 제 결정이 그에게 커다란 고통을 안겨 주고 있음을 그의 얼굴에서 역력히 읽을 수 있었습니다. 회장이 그를 대신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부님, 저는 그 예비자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아주 신앙이 돈독한 사람입니다. 저희 교우들이 심한 박해를 받고 있었을 때 그는 신자가 되고자 저를 처음 찾아 왔던 사실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아직까지 신주를 제거하지 않은 것은 그렇게 해야 할 절대적 필요성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예비자가 이번에 기대하던 영세를 받지 못하면 크게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악마의 유혹에 빠져 그의 마음이 타락하지 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제 생각에는 신부님께서 그가 집에 돌아가는 즉시 미신에 관계된 모든 물건을 불살라 없애겠다는 약속을 받고, 그에게 영세를 주는 것이 제일 바람직한 방법이 아닌가 합니다.” 저는 위와 같은 회장의 조언을 귀담아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떤 예외도 용납하지 않는 로마 교황청의 규칙을 재삼 내세웠습니다만 그 회장은 저를 설득하기 위해 또 다른 주장을 폈습니다. “신부님, 그 신주들은 이미 없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예비자가 자기 집에 돌아가는 즉시 신주를 없애 버리겠다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곳에 살고 있다면 오늘 저녁이면 그 물건들을 제거할 수 있을 것이지만 이곳에서 굉장히 먼 곳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이번에 영세를 받지 못하면 그는 8개월 또는 그 이상을 기다려야 하고 그 사이에 그에게 죽음이라도 닥친다면 어떻게 합니까? 그가 사는 마을에는 죽음이 임박한 사람에게 대세를 줄 수 있는 교우는 아무도 없습니다.” 회장의 솔직하고 진지한 태도와 그가 내세운 주장의 타당성 때문에 저는 다시 심사숙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그에게서 그가 집에 돌아가는 즉시, 한시의 지체도 없이 그의 집안에 있는 신주들을 모두 불살라 없애겠다는 다짐을 받고, 그를 아오스딩이라는 이름으로 영세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성 아오스딩에게 그를 사탄의 손아귀에서 구하여 줄 것을 기도했습니다. 시간이 좀 흐르고 나서야 그 회장이 옳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아오스딩은 약 2개월 후 그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외인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약속대로 그의 집에 있던 신주들을 모조리 불살라 버렸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그는 갑자기 몸져눕고 20세 아래인 그의 아들과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벌써 그전에 아오스딩의 돈독한 신앙에 보답하여 주시었으며 그가 하느님을 늦게 찾은 사람이었지만 다른 교우들과 똑같은 은총을 내려주시었습니다. 며칠 동안에 그는 긴 인생을 산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영세의 은총을 받고 난 뒤로 그는 모든 순간을 하느님을 섬기는데 바쳤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인 아오스딩과 함께 세상을 떠난 아들은 죽기 전에 하느님의 은총을 입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그가 하느님의 은총을 거부하고 그의 부모에게 복종하지 아니한 죄를 응징하셨으리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그의 형제들과 더불어 공부하기를 싫어했을 뿐 아니라 그의 아버지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항상 불만스런 태도를 보였습니다. 아오스딩 신자 집안의 이러한 불행에 대해 외인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아 아오스딩이 신주를 불살라 버렸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들 애기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하느님 나라에 있을 저희 아오스딩이 악마의 사주에 눈이 먼 불쌍한 외인들을 일깨워 주길 바라고 그들이 교우가 될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영적(灵跡)을 이루어 주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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