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가밀로 신부 서한 57 Mutel 문서 1903-140/장호원, 1903.10.25.
주교님께,
주교님께서 지난여름의 한 편지에서 저에게, 원칙적으로 회수되었으나 여전히 한충근이라는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제천의 토지 문제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외부(外部)는 제가 그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이 문제의 판결을 제천 사또에게 일임했습니다. 저는 사실상 거의 관여하지 않았습니다만 외부의 어처구니없는 명령에 따르기 위함이 아니라 석공이로 시간을 너무 뺏겨 그럴 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해야 할 바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저는 사또에게 글을 써서 저희 수확물을 훔쳐간 도둑들을 처벌하라고 요구했으며, 장물을 돌려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답신이 없었습니다. 사실 저와 사또는 아는 사이입니다. 제 서신에서 사또가 늙은 자기 부친 이용직과 함께 저를 찾아왔었다고 주교님께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제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 후 일이 잠잠해지자, 사또는 임(任) 신부(부이용 신부를 말한다.) 없이도 일을 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는 답장마저도 안 해주었습니다. 그 불쌍한 젊은 사또는 하느님께서 그를 심판대에 부르시기 얼마 전에 저를 필요로 했을 것이오나, 한 달 전에 배임죄로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한충근 사건은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제가 수차에 걸쳐 사람을 한씨 집에 보냈지만 소용없는 일이며, 서울의 서류 없이는 수확물을 보낼 수 없다고 하는데, 훈령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교님의 정신적 인도를 요청하옵니다. 저는 어떠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외부에서 프랑스 공사관에 호소하는 길 외에는 방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미결 사건은 이미 회수된 토지들에 피해를 주고 있으며, 토지를 뺐긴 지주들은 다시 고개를 쳐들 것이므로 이 일을 빨리 완결지어, 저와 제천 교우들이 먹을 양식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도움으로 프와요 신부(Poyaud, 한국명 表光東. 1903년 조선에 입국한 그는 1903년 당시 강원도 지방에서 활동하고 있었다.)는 주위에 훌륭한 신자촌을 갖게 될 것입니다.
주교님께 올린 서신에서, 제가 매괴의 성모성당을 건립하는 것에 대해 이미 언급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걱정과 돈 문제가 따릅니다. 게다가 빚을 질까봐 걱정이지만, 장호원에 그토록 염원하던 성당이 서게 될 것입니다. 등대 모양의 작은 종탑이 건물 위에 세워질 것이며, 성탄절 전날에 조명을 할 수 있 수 있도록 준비해 놓았습니다. 또한 제가 작은 종일 구입할 수 있으면, 제 종탑은 사람들을 부르게 될 것입니다. 저희 소유인 동쪽의 작은 산은 매산(玫山)이라고 부르며 제가 사는 마을은 뫼산 뒤인데, 제 의무감이 느껴지는 것 외에도 매괴 성모 성당이 다른 어떤 이름보다 새 성당에 더 잘 어울립니다. 저성침례 이전에 모든 것이 확실히 끝날 것입니다. 내일까지 성당에 지붕을 모두 얹게 되며 오늘 종탑에 지붕을 얹었고, 아름답게 꾸미는 일만 남았습니다. 목공들이 마루를 대패질하고 널빤지를 톱질하여 남녀석(男女席) 양쪽을 모두 수리 중이며, 미장공들은 벽을 쌓고, 다듬는 중입니다.
저는 주교님께서 경상도를 방문하신 후 상경하시는 길에 매괴 성모성당을 축성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또한 주교님께서 1893년 때와 같이 본당 방문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습니다. 로베르 신부(Robert, 한국명 金保錄. 1877년에 입국한 그는 1903년 당시 대구에서 활동하고 있었다.)가 최근 제게 편지를 써서 주교님께서 10월 16일 장호원에 오시기로 되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제 계획을 바꾸어야 합니다. 16일까지 공사를 모두 마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고 봐야 하겠습니다. 가부간 주교님께서 방문 일정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주교님께 이것을 말씀드리지 않았다 해도 저는 주교님 방문을 21일로 기원하겠습니다.
공베르 신부 형제 두 분이 어제 다녀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