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가밀로 신부 서한 17 Mutel 문서 1896-73 부엉골. 1896.7.7. 드 플랑스(De Plancy ; Collin de Plancy, 한국명 갈임덕. 1888년 6월 6일부터 1891년 6월 15일까지 주한 프랑스 공사겸 총영사로 근무하였다.) 공사에게 편지를 쓰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기 때문에 오늘 주교님께는 유감스럽게도 몇 마디 말씀 밖에 드리지 못하는 점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 편지를 봉하지 않은 채 보내 드리니 주교님께서 읽어보시고 필요하면 수정을 가하시기 바랍니다. 또 공사에게 이 편지를 보내지 않는 편이 더 바람직하다고 여기시면 주교님의 의사에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제 편지가 길기는 하지만 결코 완벽한 것이 되지 못하니 만큼 안당(안토니오 Antonius)성인이 사막에서 앞장서서 나갈 때 그리하였던 것처럼 절도를 지키는 게 나을 듯합니다. 다른 한편 일본군들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 주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의 행위는 지나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들은 여느 때처럼 오늘도 성당지기의 채소를 마음대로 뽑아 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가 지키고 있을 때는 한 번도 온 적이 없습니다. 주교님께 제 편지를 전달해 드리고 제게 주교님 답장을 가져올 사람은 주교님께서 잘 아시는 이교영이라는 주사입니다. 그는 제가 공사에게 쓴 편지를 휴대하고 간다는 사실을 모르니 주교님께서도 이 사실을 그에게 침묵에 붙여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번 주교님 편지를 받고 나서 저는 성당 건축 용재를 마련하고 있는 효자골에 가서 숲의 주인을 만나 보았습니다. 그리고 무슨 이유로 프랑스 공사를 만나러 가서 우리가 그의 목재를 훔쳤다고 말하였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이교영 주사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다리가 아파서 아무 데도 갈 수가 없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말할 나위도 없이 숲 주인도 제가 얘기한 것과 같은 행동을 한 적이 없으며 제가 목재 구입을 위해서 보낸 사람과 좋은 말로 타협을 보았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 서울에서 내게 그와 같은 편지가 올 수 있느냐”는 저의 물음에 그는 목재 구입을 담당했던 교우를 가리키면서 “그건 한씨가 일을 그렇게 벌려 놓은 것이오.”라고 대답했습니다. 결국에는 모두가 하인에게 책임을 전가시키고 마는데 제 생각에 숲 주인에게는 잘못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에게 “누가 잘못을 하였든지 이 일을 이러한 지경에 놓아두지는 않겠소, 내가 도둑놈으로 취급받고 싶지는 않소.”라고 말하고 “수일 안에 이교영이와 함께 부엉골에 오시오. 서울 주교님과 프랑스 공사에게 보내는 편지를 한통 써 줄 터이니 두 분으로부터 당신이 실언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표(확인증)를 받아오시오. 그렇게 하겠다는 조건으로 나는 당신을 용서하겠소. 당신이 용서를 받을만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우리 천주교의 가르침에 남에게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도 용서를 베풀라는 말이 있기 때문이오.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일은 그렇게 끝나지는 않을 것이오.”라고 말했더니 숲 주인은 말문이 막혀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오늘 그는 목재를 구입할 당시 함께 있었던 숲 감시자를 제게 보냈습니다. 저는 이교영이를 만나야겠다고 하면서 그를 그냥 돌려보내려는 기색을 보이자 이교영이는 다리가 아파서 오질 못했으니 용서를 해달라고 간청을 하였습니다. 제가 그 말을 믿은 것은 아니지만, 서울로 편지를 전할 수 있는 인편을 하나 얻는데 만족하고 그들을 용서하여 주었습니다. 추 신 기왓장 값이 무척 비싼데 지붕을 함석으로 덮으면 괜찮을까요? 금년 말까지 성당의 골격을 세우고 지붕을 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다! 오직, 하느님의 영광만을 위한 이 일에서 하느님은 저를 시험하시는 듯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위한 일은 언제나 시련이 따르는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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