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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가밀로 신부 서한
임 가밀로 신부 서한 14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7.09.07 조회 8616
이메일 eunju2843@naver.com

임 가밀로 신부 서한 14         Mutel 문서 1896-10             부엉골 1896.2.11

 

 

금년 초에 미리내에서 주교님께 편지를 드렸는데, 잘 도착했는지 궁금합니다.

 

서울 소식에 접하지 못한 지 4개월 째 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지난주, 일요일 이 마두가 프랑스에서 온 편지를 전해주었지만 서울에서 온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르 메르 신부한테서도 서울 소식은 아무 것도 듣지를 못하였습니다.

 

보름 전에 이곳에서 멀지 않은 강원도에서 발생한 일들에 대해서 이미 무슨 얘기를 들으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지방에는 반일 감정이 격하게 일고 있고, 또한 그것이 모든 외국인들에 대한 감정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요즈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일쑤인 말은 모든 외세(外勢)를 축출하고 나라의 복고를 이룩하자라는 것입니다. 마을 도처에는 모든 왜양(倭洋)은 섬멸해야 한다는 벽보가 붙었습니다.

 

여주는 이제 반도들의 진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아녀자와 아이들은 최소한의 먹고 살 식량도 갖고 갈 수 없어서 몸만 피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도처에서 반도들이 의병(義兵)이라는 이름 아래 집결하고 있는데, 그중 상당수가 강원도 출신입니다. 131일에는 이곳 사또도 몸을 피했고, 며칠 후에는 부산까지 연결된 전신선이 여러 군데에서 끊겼고, 26일부터는 상당수의 일본인 상인들과 전신선 담당자들이 죽음을 당하기 시작했습니다. 죽은 자들의 시체가 마을이나 강에 산재해 있고, 신자들은 모두 도망을 갔습니다.

 

도망가던 일본인 중 한명은 의병들에게 붙잡혀 죽었습니다. 또 다른 한명은 배가 너무 고파서 여기서 5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호원장(Ho Ouen tiyang)이란 마을의 한 민가에 밥을 얻어먹으러 들어갔습니다. 집 주인이 그를 방안에 들어오게 하자마자 사람들이 집을 둘러싸고 그를 끌어내서 바늘로 찌르고 나무로 때리고 했습니다. 그 일본인이 자기가 가지고 있던 칼로 방어하려 들자 마을 사람 중 한 명이 칼을 뺏으려고 그 일본인을 덮쳤습니다. 그 마을 사람은 손에 부상을 입었지만, 칼은 뺏어냈습니다. 기진맥진해 있던 일본인은 결국 매를 못 이겨 숨지고 말았습니다. 들리는 말로는 그 일본인이 약 200냥을 몸에 지니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를 죽인 사람들이 그 돈은 차지하였음은 물론입니다.

 

일요일 아침 새벽녘에 여주 쪽에서 총격전을 벌이는 소리가 들려 왔는데, 무슨 일인지 알아보게 하려고 사람을 보냈었습니다. 27명의 일본 군사들이 앞서 말씀드린 그들의 동료가 죽음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서 복수를 하기 위해 온 것이었습니다. 9명의 일본군이 목숨을 잃었고, 나머지는 도망갔습니다. 도망갈 때 잡히지 않으려고 그들은 입고 있던 옷을 다 벗어버리고 갔다고 합니다. 조선 사람들한테 제가 들은 대로 말씀드리는 것이지만 좀 믿기 힘든 얘기입니다. 가장 믿기 힘든 사실은 반도들 편에서는 희생자가 한명도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얼마나 지속될는지요? 제가 보기에는 얼마 못갈 것 같습니다. 일본이 이런 상황이 지속되도록 구경만 하고 있을 리는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벌써 서울에 500명의 일본군이 도착했다는 얘기가 있으며, 약 보름 전에 이곳을 통과한 관군이 강원도에서 상당수의 의병들을 소탕했다 합니다. 관군이 다시 여주에 올 지도 모릅니다.

 

머지않아 조선 땅에는 평화가 다시 깃들 것 같습니다. 그러나 걱정이 되는 일은 평화를 되찾은 후에 조선 정부가 스스로 불러들인 외세를 몰아내려고 하다가 그들의 속박을 받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이 외세가 러시아가 될지, 일본이 될지는 모르나 불행히도 현 시점에서 그런 염려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보호를 빕니다. 벌써 러시아인들이 조선 땅을 돌아다니며 지도를 작성하고 있다고 하며 제가 들은 것 만해도 두서너 무리의 러시아인들이 이 지역에 왔다갔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실들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곳에서 60리 떨어진 지점, 양근(陽根)에 이르는 길의 어느 한 지점에서 수명의 러시아인들이 포군에 의해 살해되었다 하는데 잘못된 소문 같습니다.

 

정원에 으리으리한 저택을 소유하고 있는 큰 부자 민응식(閔應植)이 성탄절 날 충주의 순군(巡軍)한테 잡혔습니다. 충주(忠州)로 끌려간 그는 머리를 깎이고 서울로 이송되어 지금 서울에 있습니다. 그는 엄청난 도둑질을 했기 때문에 정중”(Jjyeng-tiyohng: 甲午史張 閔應植 統軍以致民怨하고 負國貪獲古今島로 귀양감)에 처해질 것입니다.

작년, 그는 장원에 있는 그의 집을 팔 의향이 있다고 말했었습니다. 제대로 값을 매기면 십만 냥 이상이나 나가는 집입니다. 109칸짜리 집이니 그 크기가 어마어마합니다. 그는 며칠 전 중개인을 통해 8000 피아스트르(당시 무역화폐로 사용되던 은화. 1피아스트르=24.5g)를 내면 집을 제게 팔겠다고 제의를 해왔습니다. 그 후 집값은 6000 피아스트르로 떨어졌습니다. 지금 제게 4000 피아스트르만 있다면 그 집을 살 수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주교님께서 제게 얼마간의 돈을 빌려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800 피아스트르면 그 집을 사겠노라고 제의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돈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아마 주교님께서는 그 집을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집값이 헐값이라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아마도 이와 같이 좋은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입니다. 르 메르 신부님에게 의견을 묻고, 그의 동의를 얻어, 그 집을 제가 800 피아스트르에 사겠다고 제의한 것입니다. 제가 서울에 저축해 놓은 돈이 400 피아스트르를 조금 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김칫국부터 마시는 격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주교님께서 제게 나머지 400 피아스트르 정도를 빌려 주실 것이라고 믿고 집값으로 800 피아스트르를 제의했던 것입니다. 내년부터 조금씩 갚아 가면 늦어도 2년 후에는 다 갚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제시한 조건들로 거래가 이루어질 지는 아직 불확실하지만 성모님께서 도와주시면 이번 일이 쉽사리 성사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제가 거처하고 있는 부엉골 은거지에서 빠져 나와 성당에서 하느님을 섬길 수 있도록 성모님께서 도와주시리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제게 은총을 내리시어 집 주인이 제가 제시한 가격, 기와 값밖에는 안 되는 800 피아스트르에 집을 팔기로 한다면 제가 수락을 해도 될는지요? 주교님께서 가부간에 연락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말 더할 수 없는 좋은 기회입니다. 4000 피아스트르를 주고 산다 해도 거저나 다름이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성모님께서 제 기도에 응답해 주시지 않고 있습니다. 계속 부엉골에 처박혀 마음을 아파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주교님, 저는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 조금도 불만스럽지 않습니다. 이곳에서 포교하게 된 것을 마음속으로 크게 기뻐하고 있으며 또 이곳에 계속 머물러야 한다할지라도 기꺼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주교님께서 저를 이곳에 보내 주신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때로는 자연의 섭리에 어긋나는 것에서조차 제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영적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제 교우들에 대해서도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하고 있습니다.

 

12세 된 두 아이가 벌써 오래 전부터 신학교에 보내줄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중 한 아이는 제가 부엉골에 처음 왔을 당시에 신학교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그러한 생각을 갖도록 제가 어떤 영향을 준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렇게 하도록 애쓰지 못한 쪽이어서 저 스스로 반성해야 할 입장입니다. 그들 부모 역시 교우들입니다. 이 두 아이는 지금까지 읽기와 쓰기를 4~5년간 배웠는데, 둘 다 총명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들은 즉시 신학교에 입학하기를 바라고 있고, 그들 부모 역시 이에 찬동하고 있습니다. 그 주요한 이유인즉 얼마 전 그들은 그들 부모의 뜻에 따라 학교를 그만 두었는데, 그들 부모가 이로 인해 생기는 공백 기간이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줄까 염려한 때문입니다. 작년에 새로 온 선생이 한명 있는데 그는 아이들에게 글을 잘 가르쳤으나 정식적인 면에서 아이들에게 커다란 괴로움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들 부모는 이러한 사실을 알고 애들을 더 이상 학교에 보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문제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지만 저 자신도 이 선생에 대해 전혀 만족하지 않고 있었고, 아이들의 태도에도 변화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작년 여름에는 신학교 가기를 희망한 두 아이 중 한 아이가(그가 고집이 세고 장난도 잘한다 하지만) 신학교에 가고자 한다는 이유만으로 이 몰상식한 선생한테 노골적인 학대를 받았습니다. 이런 사실을 제게 말해준 사람은 그 아이가 아니라 다른 아이들입니다. 그 선생이 너 또 다시 서양사람을 만나러 갈거야, 안 갈거야?”라는 질문에 그 아이가 대답을 하지 않자, 그 선생은 아이에게 매질했고, 아이는 매를 맞고, 마지 못해 안가겠다고 대답을 했답니다. 이 소년은 이 도마라고 하는데 부모를 여의고 그의 삼촌집에 살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바오로라는 사촌이 있는데 이 바오로란 소년은 형제 중 장남입니다. 이 소년이 신학교를 가고 싶어 저를 찾아 왔을 때 저는 그에게 그가 장남이기 때문에 신학교에 입학할 수 없다고 말하고, 그의 아버지에게도 같은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이에 대해 그의 아버지는 내 아들이 성직자가 되고 싶어 하는데도 그가 신학교에 가는 것을 막는다면 나는 커다란 죄를 짓는 것으로 생각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소년의 아버지의 이와 같은 말에 저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습니다.

 

 

주교님, 그 소년이 장남이라는 이유로 신학교의 입학이 거부되면 그의 부모는 크게 실망할 것이고, 그 소년 자신도 슬픔에서 헤어나질 못할 것입니다. 위 두 소년에게 저는 알파벳과 라틴어 공부를 시키겠습니다. 부활절 때 신학교에 이들이 입학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지금 두 소년은 첫영성체를 경건한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바오로라는 소년이 신학교에 가고자 하니,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는 아주 훌륭한 신부님이 될 소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부모도 저에게, 그를 신학교에 꼭 보내줄 것을 간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장남이라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그가 진정 성소를 가지고 있으면 그가 비록 장남일지라도 신학교에 입학하는 것을 허락할 수는 없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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