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가밀로 신부 서한 120
Mutel 문서 1922-Ⅱ
연말보고서(1922년 봄)
주교님께,
저희는 1920년 11월 초엽에 푸마소니 비온디(Fumasoni Biondi)교황 사절께서, 주교님을 대동하고 이곳을 방문하시어 영광스럽게 생각했었습니다. 1921년 같은 시기에 보좌주교(드브레 Devered 주교. 1920년 11월 1일 보좌주교로 성성되었다)께서 최초로 주교순시를 행하셨습니다. 존경하는 고위 성직자들의 축복을 받고, 하늘의 축복을 보증받고 있는 매괴의 성모성당은 계속 앞으로 전진하여 고해성사 7,400명이상, 영성체자 4만명 이상, 성인영세자 35명, 임종대세자는 교우자녀가 53명, 외인 자녀가 95명, 신자수 970명, 남녀 학교 학생수 160명을 기록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성모님께서 우리를 보살피고 계십니다.
대세자는 저희가 지금까지 기록한 숫자를 훨씬 앞지르고 있습니다. 제가 임종 위험에 처해 있는 외교인 자녀들에게 대세를 주는 아름다운 사업에 대해 말한 것을 충직한 제 교우들이 애써 귀담아 들은 덕택으로 이들은 저와 행동을 같이하여, 천연두가 특히 어린이들을 휩쓸은 이 해에 경탄할 만한 일을 해주었습니다. 저는 우선 이런 자원 여성들을 위해, 다음으로 전 신자단과 이 지역의 모든 외인들을 위해 이들 어린 천사들의 최선의 지원을 기대합니다. 천국에 오른 복된 아이들은 하늘에서 무심코 있지 않을 것이며, 소화 데레사 성녀와도 같이 지상에 불행하게 남아있는 자들에게 축복의 비를 내려줄 것이며, 있는 힘을 다해 이들을 참 행복의 길로 인도하여 자신들과 같이 이러한 일을 행하도록 해줄 것입니다. 가능한 한, 여성 영세자 지원자 수를 배가시켜 외인들에 대한 전도를 행하게 했습니다. 우선 기도로써, 다음 훌륭한 모범과 훈계로써 일을 했는데, 특히 이들 중 한 영세자는 지식이 미비함에도 불구하고 경탄스러운 일을 해주었습니다.
신자단을 지도하기 위해 교육받은 회장들, 그리고 견실한 종교지식과 두터운 믿음으로 무장한 교우들이야말로 저희들이 필요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교리문답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조선교회의 창설자들이 물려준 전통에 의하면, 노소 할 것 없이 매년 찰고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의미 그 자체와 의미에서 끌어낸 실천과는 별개의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저희 교리문답이 개정될 필요성이 있음을 겸손되이 지적하고 싶습니다. 일부는 불편 없이 축소될 수 있으며, 너무 간결한 문제들은 더욱 전개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교회, 성사집전, 기도, 계율). 그러나 이 일은 제가 상관할 바가 아닙니다.
매년 거행되는 성체첨례날의 거동은 올해에는 보좌 주교님이 임석하시는 관계로 특별히 엄숙하게 거행될 것입니다. 성체께서 매괴산 높은 곳에서 주변의 주민들에게 축복을 내리사 이들을 진리로 인도하여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저는 매일 ‘성모님, 이 가련한 외인들을 개종시켜 주옵소서. 그들이 은총마저 거부한다면 훌륭한 교인들로써 교체시켜 주옵소서’하고 기도를 드립니다. 현재까지 두 번째 부분의 기도가 이루어져서, 교우들이 와서 외인들의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저는 이미 오래 전부터 19년 전에 세워진 돌담을 쌓은 성당이 비좁은 것을 행복스럽게 한탄해 왔습니다. 소녀들을 제의실에 앉히고, 소녀들을 제단 계단 위에까지 데려다 놓아도 모든 교우들을 수용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긴 의자들이 실내를 혼잡하게 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교우들이 맨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기 때문입니다. 저의 꿈은 성모님에게 어느 정도 합당한, 벽돌로 지은 넓은 성당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교도의 암흑속에 빠져있는 수많은 불쌍한 영혼들에게 계속 부드럽게 호소할 수 있는 성당을 말입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현실과 점차 멀어져가는 이 아름다운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런지요? 저는 제 조그만 힘이나마 기울여서, 수년 전부터 건축자재와 돈을 모아오고 있습니다만 모든 것이 점점 비싸지기 시작합니다. 8년 전에는 1만 엔이면 건립하기에 충분했을 것을 현재는 십만 엔이 듭니다. 이렇게 엄청난 공사비를 염출할 수 없어서 견적가격을 보고는 작심한 나머지 ‘성모님, 저는 성모님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건축계획이 착수되기를 원하시오면 관대한 영혼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켜 주옵소서. 저는 오로지 당신의 보잘 것 없는 종일 따름입니다’라는 기도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저로서는 해결할 길이 없는 이 문제의 와중에서, 더욱 위급하고 염려스러운 또 다른 문제가 커다란 장애로 생겨나 매괴산 중턱에 성당을 건설하는 계획을 무기한 연기하거나, 완전히 중지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학교에 관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학생들은 저에게 윤리적 고통거리가 되고 있으며, 하느님께서는 제가 이 학생들에게 지닌 애정에 대해 저에게 댓가를 치르려 원하십니다. 한때 사람들은 지옥이 마치 질투심 많은 암 호랑이처럼 온통 끼어들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학생들을 보호하고 있던 이들, 말하자면 영원한 구원을 팽개치고 자녀들을 외인 학교에 보내는 학부모들 자체로부터 아동들의 영혼을 보호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교님께 고백하옵건대, 영웅적인 방법을 택하여 매괴 성모님께 ‘오, 성모님, 지금까지 당신의 신자집단을 위해 지금까지 그토록 많은 사업을 행하신 당신께서 구원하러 오시옵고, 필요하다면 제 생명까지도 받으시되 당신이 지도하고 계신 학교와 당신의 어린 아이들을 구원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제가 과거에 성 요셉과 소화 데레사의 도움을 받아왔던 만큼 성모님께서 제 기도를 중시하지 않으셨으나, 제게 그토록 근심을 안겨준 두 학교가 사라지기는커녕 실제적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악마는 여전히 수발의 대포를 쏘거나 독까스를 내뿜으려 하고 있지만, 후퇴하고 있습니다. 성모님은 다시 한번 악마의 머리를 쳐부셨습니다. 사탄은 출정한데 대해 후회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 까닭은 외교인 교사 지도하에 그럭저럭 운영되는 25명의 학생을 두고 있는 빈약한 남학교 대신, 제가 2명의 교사 신자와 회장에 학생 50여명의 학교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엔 학생들이 쉽사리 학교에 오지 않았으나, 오늘날 단 한명의 학생도 빠지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과거엔 사업을 잘 이해하지 못한 교우들이 여간해서는 저를 도와주지 않았으나 현재 이들은 남학교 유지를 도맡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욱 유효 적절히 여학교일을 맡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훌륭한 남녀 교사를 확보하는 것입니다. 외인들은 특히 여학생들을 공립학교보다는 저희 학교에 보내고 있는데, 종교 계통 학교에서 교육시키는 것이 학생들 몸가짐에 더 낫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다행히도 수녀 두 분이 학생 100명을 가르치고 있어 너무 힘에 겨울 뿐 아니라, 갖춰야 할 학식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시대는 이제 학교편이 되어서, 조선인들이 교육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현 시점에서 제가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재원과 남녀 교사를 갖추고 있다면, 외교인들에게 자선을 베풀 수 있다는 견해를 주저 없이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의 학교에 배우러 오는 학생들이 모두 교인이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학생들이 교육을 받은 후 부모들이 정식으로 요청하지 않는 한 학생들에게 영세를 준다는 것을 위험하기조차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학교에 오지 않았더라면 획득하지 못했을 종교에 대한 지식만큼은 갖게 될 것입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을 통하여 천주교 교리를 더한층 믿을 것이며 그중 여러 부모들이 천주교로 귀의할 것을 의심치 않습니다.
제 견해를 뒷받침하는 사실이 한 가지 있습니다. 제가 이곳에 정주한 초기 어느 해(25년 전), 저는 교우들의 도움으로, 한문만을 가르치던 서당을 하나 유지했습니다(조선의 모든 학문은 난해한 한문 지식 속에 가로막혀 있었습니다). 어떤 학생들 가운데, 외교인인 장난꾸러기 어린이가 하나 있었는데, 그 후로는 저는 이 학생을 다시 본 적이 없습니다만 소문에 듣기로는 이 불쌍한 소년이 온 마을을 돌아다니며 방종한 생활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놀랍게도 그가 제게 와서 인사를 했는데 15세의 아들을 저희 학교에 다니게 하려고 왔던 것입니다. 저는 물론 25년이 지난 후여서 그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기 신분을 밝히면서 외교인이면서도 자기 아들 앞에서 몇 마디 고백을 했습니다. “제가 후회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신부님의 의견을 듣지 않은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저는 타락한 인간이 되지 않았을 거에요. 이제는 달리 도리가 없습니다. 저는 현재 생활의 와중에 있으며, 첩을 두고 있습니다만 제가 쓸모없는 인간일지라도, 제 아들만은 아직 온순하니 신부님께 맡겨 착한 인간으로 키우려 합니다.”
“내 말 잘 들어라, 신부님 말씀을 모두 새겨듣고 네 아버지가 해야 했을 바를 행하도록 해라”이런 광경을 보고, 저희들을 아는 외인들이 적어도 저희들에 대해 좋은 추억을 지니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학교 문제가 가장 시급하게 되었기 때문에, 저는 먼저 학생들이 배울 교사를 먼저 건립하기로 작정했으며, 이를 위해 성당건립을 위해 저축해 두었던 약간의 돈으로 우선 교실을 짓기로 했습니다. 성모님께서 이 일로 저를 탓하지는 않을 것이며 이를 위해 제가 치루어야 하는 희생을 고려하실 것입니다. 성당 건립이 제게는 전부였기 때문에 정말 희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가 바라지 않더라도, 수년 전부터 사립학교로 알려진 이 학교가 그날 이후 공립학교로 인정되다시피 했습니다. 학생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제가 조선에 온 후로 지난봄처럼 그렇게 윤리적으로 고통을 겪은 적은 없다고 여겨집니다만 사실 헛된 고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볼 때, 그 시련으로 얻은 좋은 결과를 명확히 알 수 있었습니다.…….
장호원 旺場里 甘谷面 陰城郡 忠淸北道
늘거리 文村里 甘谷面 陰城郡 忠淸北道
슌 션 文崇里 薪尼面 忠州郡 忠淸北道
샘 골 五笙里 笙極面 陰城郡 忠淸北道
본 암 鳳峴里 孟洞面 陰城郡 忠淸北道
시 울 新溪里 梨月面 鎭川郡 忠淸北道
룡월리 龍月里 三竹面 安城郡 京畿道
반 골 本竹里 栗 面 利川郡 京畿道
다래촌 九時里 大月面 利川郡 京畿道
독바위 峴岩里 北內面 驪州郡 京畿道
오 감 伽倻里 尿川面 驪州郡 京畿道
황거리 三橋里 州內面 驪州郡 京畿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