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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가밀로 신부 서한
임 가밀로 신부 서한 122(마지막 서한)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8.12.12 조회 316
이메일 eunju2843@naver.com

임 가밀로 신부 서한 122(마지막 서한)

 

Mutel 문서 1924-

연말보고서

 

장호원 1924.5.12.

 

주교님께,

저희 주변에 있는 외교인 집단을 교회 품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것은 바로 각 선교사들이 항상 자문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특히 성인 영세자의 수가 감소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자문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유일하고 믿음직한 보호자라는 진실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위협받고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교회가 더욱 비좁은 막 속에 봉해져서, 선의의 인간들로부터 더욱 멀어져 은폐 되어 있는 것입니까? 일견해 보면, 긍정의 대답인 듯합니다. 교회를 둘러싸고 있는 적들의 숫자와 적들의 무시무시한 무기를 생각해 보면 진실이란 그 올바름과 솔직함만을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포화를 장진한, 계속적인 공격을 일으키는 새로운 사상들, 무시무시한 무기와 수백만 달라를 지니고 있는 모든 종류의 이교(異敎), 젊은이들의 윤리적, 육체적, 건강에 해를 주는 사창가들, 모든 교리를 일소하는 관리들, 신교적 사상을 지닌 교육자들 혹은 무신론적 입장을 자랑삼는 교육자들 등이 우리의 적입니다. 이때까지 단순했던 조선은 이 모든 난잡한 상태에서 스스로를 인식하기에는 준비가 잘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사창가만 하더라도 너무 많이 확산되어 있어서 많은 악을 유발하고 있으며, 후회스럽게도 일본의 책임인 한일합방이 그 원인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합방 전에는 한국 여성들이 그러한 직업을 화해 수단으로 공공연히 행했다는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이 마지막 문제를 떠나서 현 시대가 사람의 마음을 끄는 것이라곤 전혀 없다 하더라도, 하지만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도 인간은 시대의 어려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까? 다행히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강력한 이교가 어느 정도 무너져 내리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승리를 외쳐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제는 늙은 조선사람인 저는 훌륭한 관습들이 홍수에 쓸려 가버리는 것을 보니 후회스럽기 한이 없습니다. 이 관습들은 자연스럽게 가톨릭 제도들을 이식시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마치 장엄한 예루살렘 성전이 유태 민족의 배신이 없었던들 최초로 새로운 율법을 축하했을 지정소가 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기본적인 전통이라고 주장되는 조상숭배와 유교가 이러한 진실을 널리 보급하는데 거의 난공불락의 두 장애가 된 것은 그래도 사실입니다.

불교에 대해서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불교가 조선은 물론 극동지역에서 영광을 누렸다 해도 이미 오래 전에 쇠퇴했습니다. 말하자면 성도가 몰락하면서 불교를 괴멸시키고 말았습니다. 불교는 500년 전부터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종파들은 합방 이후 불교를 재건하려고 했습니다만 독신생활에 대해 완화시키는 정도가 고작이었습니다. 주교님께서는 분명히 조선인들이 조선엔 청동 부처상이 더 이상 없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들으셨을 것입니다. 진실이 없는 교리란 하나같이 내적(內的)인 힘을 가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내재적인 힘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교리는 민간의 지지에만 의지해야 하거나 백성의 순간적인 망상에만 의존해야 합니다. 이러한 지지란 일시적인 것으로서 사실 너무 변하기 쉽습니다. 이를 재삼 확인하는 문구가 있습니다. ‘하느님이 집을 짓지 않으시면, 그 집을 짓는 일꾼들은 헛된 일을 하는 것이다.’

이제 실제적인 관점에서 내려지는 유일한 결론이란 오로지 하나, 즉 하느님이 세상을 주관하는데 관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조선이 현재 처해 있는 도덕적, 교리적 혼란의 와중에서 저희들은 진리의 승리를 끌어내려 하고 있으며 이는 마치 노아의 방주가 홍수위에 떠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모든 선교사들이 염원하는 것이며, 저희는 이 보고서 서두에 제기된 문제의 해답을 얻을 것입니다. 불행히도 요란스러운 주장들 가운데서 진실을 포착하기란 쉽지 않으며, 이 지구상에서 매우 공통적으로 진리에 대해 말을 합니다만 그것을 찾아내기 또한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귀금속과 마찬가지로, 진실은 숨어 있습니다. 진실을 찾는 사람들은 더욱 가치 있는 인간들입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외인들, 그리고 에와의 자손들에게 부족한 것은 정의(正義)입니다. 일반적으로 정의야말로 난제를 해결하는 요소가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혜로 예외가 존재합니다. 한 달 보름전 제 본당에서 4km떨어진 마을에 사는 두 젊은 외인들이 저를 찾아왔는데 그중 한 젊은이는 마을의 우두머리였습니다. 그 때가 미사가 끝난 일요일이었고 그는 저에게 세상이 하도 뒤죽박죽이어서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도리가 없다.” “우리는 가톨릭교에 대해 중상하는 말은 조금 들은 바 있으나 알지 못한다. 우리는 다만 천국의 주인인 이 종교를 알아보기 위해 온 것이지 마음의 안식처를 가톨릭에서 구하러 온 것은 아니다라고 대강 말했습니다. 저는 이들의 눈에서 두 개의 올바른 영혼을 보았으며 그것은 꼭 들어맞았습니다. 저는 이들에게 한참동안 저희 아름다운 교리, 만인이 접근할 수 있는 단순성 그리고 그 논리에 대해서도 설명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세상에 진리란 오직 하나인 것과 같이 유일한 진리인 저희 종교를 벗어난다면, 인간은 지상에서 존재 가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느님의 가호로, 종자가 좋은 땀에 심어진 듯했습니다. 젊은이들은 매주일 미사에 참석하러 모든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미사 동안 교리책을 공부해오고 있습니다. 저는 이미 여교우들을 보내어 그들 가족 전체에게 교리를 가르치도록 했습니다. , 하느님께서 저희들을 모든 외교인 마을로 인도하여 주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신념을 가지고 기도를 합니다. 저희 교우들이 그들 동료들을 가톨릭에 귀의토록 좀더 열성을 가져준다면 대단히 바람직할 것입니다. 이에 관해 교우들에 대한 훈계가 있었지만, 이들은 여전히 그러한 종교의 유용성이나 아름다움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장호원에서도 외인들의 많은 유아들에게 영세를 주는데 성공했습니다. 유아 영세에 관해서, 부모들은 일반적으로 반대하지 않으며 흔히 교우들에게 영세 희망을 사전에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귀여운 유아들이 적어도 빛을 등진 채 남아있는 사람들을 항상 기억하기를 기대합니다.

오늘날 성과가 좋은 학교 운영은 저에게 여전히 많은 근심을 안겨주고 있으며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럴 것입니다. 위안이 되는 바는 어떤 형태의 고통도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인데 이것은 골고다의 위대한 희생에 참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학교는 6월초에 170명이었으나, 이 지역에 공립학교가 하나 개설되어서 비통하게도 학생수가 반감되는 사태를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새 것이 항상 좋은 모양입니다. 그 후에는 더 강한 쪽으로 가버리는 단층적 경향이 나타나고 있으며 그 밑에 숨겨진 관계로 말미암아 학생들이 유혹에 빠진 것도 있습니다. 과거에 이 가련한 학생들을 보살폈던 매괴의 성모께서 현재, 미래에도 보살펴주시기를 빕니다. 저는 매일 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여 학교에는 적어도 주보이신 성모님이 계십니다. 다른 학교로 간 학생들은 저를 만날 때 꼭 인사를 합니다. 이것은 바로 스승 신부에 대해 좋은 추억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교우들은 종교적인 관점에서 볼 때 거의 같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 증거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잦은 고해자의 수와 재영성체자 숫자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여기에 대한 제 꿈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성모님을 구심점으로 이룩해야 할 사업 등 많은 것이 있습니다. 현재 커다란 근심 중의 하나는 이미 수년 전부터 계속되어 오고 있는데 다름 아닌 대규모의 성당건축입니다. 교우를 모두 수용할 수 있을 만큼 큰 규모일 것이며 그렇게 되면 지금의 성당은 사제는 건축 자재를 모으고 있습니다만 그의 마음이 젊다손 치더라도 이미 노년기에 접어 들고 있습니다. 성모님께서 저희를 도우시어 이 모든 계획을 실현토록 해주시기를 기원합니다. 매괴산 중턱에 위치할 다음의 성당건립 후보지에는 건축용 석회석이 무척 많이 쌓여있습니다만 신축까지는 아직 요원하며 앞으로 준비해야 할 자갈 외에도 많은 것들이 필요합니다. 작은 신자 집단 안에 상당수의 냉담자들이 돌아와 있습니다. 그러나 비참은 외인 중에서나 교우들 중에서나 전반적인 것입니다. 이들은 과거에도 가난했고 요즈음도 대부분 가난한 실정입니다. 가장 부유한 층이란 빚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주교님, 서신을 마치면서 현재 조선에 커다란 우려가 팽배해 있음에 유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빈 집이 눈에 띄지 않는 마을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가난한 주민들이 돈을 벌기 위해 만주나 다른 곳으로 떠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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